발효는 인류의 생존과 음식문화 발전에 깊이 관여해온 자연기술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리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여러 문명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발효를 발견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는 고유한 기후와 식재료,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발효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지역의 발효기원과 특징을 비교하며, 인류 공통의 지혜인 발효의 다양성과 깊이를 알아봅니다.
동아시아 발효기원의 공통성과 차이점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는 발효문화가 특히 발달한 지역입니다. 세 나라 모두 기후가 계절적으로 변화하며, 여름철 습하고 겨울철 춥기 때문에 음식 보존 기술이 필수였고, 발효는 생존 수단이자 문화로 정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발효가 곧 전통음식의 중심이었습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청국장, 젓갈 등 다양한 종류의 발효식품이 존재하며, 집집마다 발효 방식과 맛이 다를 정도로 발달했습니다. 특히 장독대를 이용한 자연발효 시스템은 바람, 온도, 습도에 따라 장의 맛이 달라지는 섬세한 기술이었습니다. 중국의 발효는 오래된 기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7000년경 이미 과일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었으며, 두시(발효 콩소스), 장(간장), 식초, 두유 발효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효를 실용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약용과 식용을 동시에 고려한 발효식품을 발달시킨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에서는 누룩균(코지)을 활용한 발효가 대표적입니다. 미소(된장), 간장, 사케, 낫토, 쓰케모노(절임류) 등에서 발효가 기본 요소로 활용됩니다. 일본 발효문화는 매우 정제되어 있으며, 미생물에 대한 이해와 온도, 시간에 대한 세밀한 조절로 고급 발효기술이 정립되어 왔습니다.
유럽의 발효기원과 치즈, 와인의 역사
유럽은 발효를 미각의 예술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 이미 발효된 와인, 치즈, 빵을 일상적으로 섭취했고, 중세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지역에서 특색 있는 발효식품이 탄생했습니다. 치즈는 유럽 발효문화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탈리아의 파르미지아노, 프랑스의 브리와 로크포르, 스위스의 에멘탈 등 지역마다 다른 맛과 향, 질감의 치즈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기후, 소 종류, 숙성 기간, 미생물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오는 발효의 예술성 때문입니다. 와인 또한 유럽 문화의 중심에 있는 발효음식입니다. 고대 이집트를 거쳐 로마시대에 본격적으로 와인 제조 기술이 발달하였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는 포도 품종별, 지역별 와인 양조 기술이 세분화되어 발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세계적인 와인 시장의 근간이 되었고, 유럽은 발효의 미학을 전 세계에 전파한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럽에서는 발효된 빵(사워도우), 요구르트, 식초 등 다양한 발효식품이 오래전부터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들은 식문화뿐 아니라 저장기술, 무역, 종교의식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프리카의 자연발효와 전통지식의 결합
아프리카는 발효를 가장 자연적인 형태로 실천해 온 대륙입니다. 기후적 특성상 고온다습한 지역이 많아 발효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고, 이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기보다는 자연에 맡기는 방식이 발달했습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인제라(Injera)라는 발효된 테프(Teff) 곡물로 만든 전통 음식이 유명합니다. 이는 발효 반죽을 팬에서 부쳐 먹는 방식으로, 천연 효모에 의해 자연스럽게 숙성됩니다. 이 과정은 특별한 미생물 조작 없이 자연 상태에서 진행되며, 수천 년간 이어진 전통 방식입니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오그리’(Ogiri), ‘도도와’(Dawadawa) 같은 발효 콩 제품이 널리 사용되며, 발효된 시큼한 맛과 강한 향이 음식의 주요 풍미로 작용합니다. 또한 카사바(고구마과 식물)를 발효시켜 만든 ‘가리’(Gari), ‘푸푸’(Fufu) 같은 전분 음식도 매우 일반적입니다. 아프리카의 발효문화는 과학적 이론보다는 전통적 지식과 경험에 기반하여 형성되었으며, 공동체를 중심으로 전승되어왔습니다.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발효는 냉장 보관 없이 식품을 보존하고 영양을 강화하는 중요한 기술입니다.
결론
한중일, 유럽, 아프리카—서로 다른 땅, 다른 문화, 다른 식재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스스로 발효를 발견하고,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 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발효는 인간이 자연과 협력하여 만든 놀라운 기술이며,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유산입니다. 오늘날 발효는 과거의 생존 기술을 넘어 건강, 산업, 환경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인류가 각 지역에서 터득한 발효의 지혜를 교류하고 재조명하는 것은 단지 음식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협력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